[책마을] 초파리는 왜…의학실험 단골로 등장할까

입력 2022-08-26 17:24   수정 2022-08-26 23:43

노벨생리의학상을 가장 많이 받은 동물은 무엇일까. 생물학 및 유전학 발전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주인공은 바로 초파리다. 초파리는 1900년 실험동물로 쓰이기 시작한 후 120년 넘게 세계 곳곳의 연구실에서 과학자 곁을 지키며 발생학 진화생물학 유전학 등의 역사를 함께 써 왔다.

과학비평가로 수많은 대중 과학서를 집필한 마틴 브룩스는 8년간 초파리를 연구한 진화생물학자이기도 하다. 그가 쓴 <초파리>는 초파리가 과학 발전에 어떻게 이바지했는지를 마치 초파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한 편의 과학소설처럼 생동감 넘치게 설명한다.

과학자들이 초파리를 좋아하는 이유는 초파리를 키우기가 쉽고 저렴해서다. 초파리는 까다롭지 않다. 500mL 크기 우유병에 썩어 가는 바나나 한 조각만 넣어 두면 초파리 200마리가 2주일간 행복하게 살기에 충분하다. 암컷 한 마리가 알을 수백 개나 낳기 때문에 번식하기도 쉽다. 태어나서 생식하고 죽기까지 불과 몇 주일밖에 걸리지 않기 때문에 한 세대에 걸친 실험이 용이하다.

초파리와 인간은 여러모로 닮았다. 알코올을 섭취하면 마치 사람이 취할 때와 비슷한 행동을 보인다. 생체 시계가 밤에는 자고 낮에는 활동하게 짜여 있어 생활 시간대에 변화가 생기거나 생체 리듬과 관련된 유전자를 조작하면 시차증을 겪기도 한다. 종족 번식을 위한 짝짓기를 둘러싸고 암컷과 수컷이 벌이는 게임의 전략은 인간 남녀의 소위 ‘밀당’을 떠올리게 한다.

유전자 치료부터 생물 복제, 인간 게놈 프로젝트 등 현대 유전학의 대부분은 초파리 실험에 기반을 두고 있다. 초파리를 통해 발견된 다양한 생물학적 사실들은 인간을 포함해 거의 모든 동물에게서 성립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유전자들이 염색체에서 직선으로 늘어서 있다는 것을 보여준 최초의 유전자 지도는 바로 초파리에서 나왔다. 인간에게 질병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정확하게 알아내는 기술도 이 지도를 바탕으로 나왔다. 단세포인 수정란이 어떻게 완전한 생물로 발달하는지에 대한 답을 제시한 것도 초파리다.

이 책은 마치 초파리가 주연이고 과학자들이 조연으로 등장하는 한 편의 소설처럼 읽힌다. 초파리를 가지고 역사에 족적을 남긴 과학자와 연구 과정이 과학을 잘 모르는 대중도 읽기 쉽게 설명돼 있다. 인간 생명의 비밀을 둘러싸고 앞으로도 풀어야 할 수수께끼가 많다. 저자는 초파리가 생물학과 유전학의 미래에서도 변함없이 주인공 자리를 지킬 것이라고 말한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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